요시모토 바나나 <새들> 리뷰 :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

ksight 2021. 8. 19. 21:14

요시모토 바나나 장편 소설 새들 리뷰

*주관적인 의견으로 쓰여졌습니다*

 

교보문고 '새들'

 

요시모토 바나나 새들 줄거리

 

"우리가 어언 십 대가 되어 갈 무렵이었다. 엄마는 지인의 집에서 몰래 들고 나온 총으로 생을 마감했다."

 

두 명의 주인공은 특이하게 가족 아닌 가족으로 얽혀있다.

모종의 이유로 남자주인공(사가)과 그의 어머니와 새아버지(?),

여자 주인공(마코)과 그녀의 어머니 다섯명이서 미국 생활을 하게 되는데,

새아버지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면서 각자의 어머니들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때 당시 두 주인공은 십대가 되어갈 무렵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세상의 전부가 부모였을 것이다.

책 소개에도 나와있듯 부모라는 세계가 산산이 부서지고 그들이 맡겨놓은 삶의 부채감을 떠안은채 고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비극적인 사건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부모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이 강박처럼 있고,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하는 서로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코는 사가에게 집착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표현도 한다. (사가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시종일관 말한다.)

 

부모님이 떠맡기고 간 삶의 무게와 동시에 가족들이 모두 죽어버렸으니 자신들도 결국 죽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시달리면서 살아갈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각자의 답을 찾아 나가는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두 사람이 잠시 떨어져 마코는 학교로, 사가는 일터에서 일상 생활을 하면서 하는 생각들, 두사람의 단단한 바운더리 밖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변화하는 과정, 종종 만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어느정도 두 사람이 답을 찾아가는 듯 하면서 책이 끝이 난다.

 

 

요시모토 바나나 새들 감상평

 

믿고보는 민음사, 믿고보는 김난주 번역가님이지만

'새들'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예쁜 표지가 시선을 끌어 선택했고,

에쿠니 가오리 소설에 한창 빠져있었던 때

김난주 번역가님의 번역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것과 다르게 내용상으로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만약 내가 중학교 시절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감명깊게 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세부설정이 너무 허술했다.

마코의 어머니마저 자살한 후 마코와 사가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마코는 친척의 도움으로 대학 생활까지 한다.

두 사람이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주변에 도와줄 친척이 있었다는 점에서 마코의 '나한테는 사가 말고는 아무도 없어'라는 배타적이고 파괴적인 태도가 드문드문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두 주인공이 겪은 트라우마는 무척이나 생소한 일들이고, 나는 평생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겪었겠지만 나를 지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에 대한 든든한 감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코에게는 그런 든든함이니나 고마움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이렇게 도와준 친척은 초반부 설정으로 슥 지나가고

후반부 갑자기 나타난 선배나 교수님에게 더 갑자기 마음을 열고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것도,

그 앞에 쌓아놓은 우울감과 고뇌에 비해 급한 결말로 느껴져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장점은 캐릭터들의 관계 설정이 독특해서 매력적이었다는 점이고,

두 사람의 생각과 고뇌와 고찰을 바탕으로 소설이 진행된다는 것이 새로웠다.

 

두 사람이 동거인으로 얽히게 된 계기, 트라우마의 발생, 같은 트라우마를 공유하고 있다는 설정, 가족을 갈망하게 된 이유 모두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고 논리적으로 타당하게 느껴졌다. 소설의 큰 틀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삶의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 트라우마가 무엇인지가 중요한데 이 부분이 상당히 매력적이라서 중간에 어? 좀 나랑 안맞는데? 싶어도 꾹 참고 책장을 넘기게 했다.

 

또 내가 개인적으로 데미안이나 인간실격처럼 존재나 무언가에 대해 고찰하는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던 것 같다.

 

나의 기대감과 초반부에 비해 아쉬움이 컸다보니 실망감에 대해 나열한 리뷰가 되어버린 것 같은데,

장마철 비는 그쳤지만 어딘가 꿉꿉하고 흐릿한 날씨 같은 소설이다.

이유없이 조금 센치해지고 싶고, 가라앉은 기분이 싫지 않은 날 읽으면 좋을 분위기의 소설이라

줄거리나 리뷰를 읽고 흥미를 느꼈다면, 그리고 내가 아쉬웠던 부분이 별로 크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면

한 번 쯤 읽는 것을 시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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